꼭 3주 전에 본당 교사회를 퇴임하고선
그 전부터 묵혀놓구 쌓아놓기만 했던 옛 교사회의 사진이나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매달렸던 제가 짰던 교안과 프로그램들..
그리고 지난 시절의 저의 글씨체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사수첩들을 뒤척이며 저는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는 합니다..
저를 교회로 부터 떠나도록 종용했던 유혹가운데 두번째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놓게 되는 저의 게으름이 경이로울 따름이네요..ㅋㅋ *-ㅗㅡa
..
파란만장 했던 군 생활을 접고 잔뜩 기대를 하고
다시 교사 회합실 문을 두드렸을 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동기 녀석은 교감이 되어 제게는 한없이 높아만 보였고 교사생활을
함께했던 선배교사들은 몇 명만 남고 모두 떠나버리고 없었던 데다가
그 해에 저희 본당은 작은 공동체 본당으로 구조가 전환되어 도통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 당시 저의 교사회 활동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무렵에 저는 복학을 뒤로 미루고 등록금을 벌어놓을 요량으로
아르바이트를 두 세개 씩 하고 있었습니다. 늘 몸은 지쳐 있었고
예전에 많은 위안을 얻었던 교회도 이제는 제게 그런 식으로 다가
오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교사회를 떠날 결심을 하고 있던 중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근 한 달여 동안
고열과 오한을 사흘간격으로 한 번씩 치루어 내던 저는 급기야 몸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 작공 월례교육이 있던 토요일오전에
서울에 올라오려고 했던 일정을 하루 앞당겨 집에 들어오자마자
집에서 혼자 이틀을 고열과 두통 오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도 몸을 혹사하여 감기를 심하게 걸린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약도
먹고 스스로 물수건을 머리에 얹어도 보았지만 열은 좀처럼 내리질
않았습니다. 잠이 들었는지 의식을 잃었던 것인지 나중에 눈을 뜨고 나서
제가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제가 군 생활하던 중 말라리아에 감염되었고 1년의
잠복기를 거쳐 이제야 발병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열이 40도가 넘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뭐하다가 이제야 왔냐며 미련한
저를 채근하시는 데 바깥이 시끌벅쩍 했습니다.
제가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교사들이 작공 월례교육 후
2차까지 나눔을 하다가 잔을 팽개치고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빨갛게 볼이
상기된 모습으로 침대를 둘러싼 교사들이 저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려다
보는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오빠 죽으면 안돼~’라며 제 팔을 흔들며 눈물을 흘리던 여교사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 제가 교사를 하게 되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그 때 처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분은 필요로서 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절 사랑하셔서 머무르게 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시련 속에서
주님은 늘 저의 아픔과 갈등과 상처를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아픔과 갈등, 상처 자체로 저의 곁에 머무셨습니다.
그렇게 늘 깜깜한 무덤 속에서 저를 끌어올려 주셨던 분이 바로 주님이시란 사실을
이 자리에서 고백합니다.
참 정신없이 해가 바뀌어 왔습니다.
비난이나 몰인정함, 원망과 미움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달렸습니다.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약해지는 자신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이 교회가 청소년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해지는 꿈을 매일 꾸고,
기도하며 달려왔습니다.
주님은 제가 했던 일을 통해 갚아주시긴 커녕
오히려 저에게 가난함을 주셨습니다.
아직 그분이 저를 통해 뜻하신 바가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늘 그러셨듯이 그 가난함을 통해 주님은 저를 일으키시리라고 믿습니다.
2000년 전 주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하신 고백 그대로 저 역시
‘제 영혼을 하느님께 맡깁니다.’
본당공동체에 주님의 평화와 사랑, 부활의 기쁨이 함께 하길 기도하겠습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5년 3월 17일 백종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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