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01년도 디다케에 썼던 글 중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기뻤던 추억들을 있어 올립니다. 담당신부님과의 만남속에서, 캠프중에 청소년과 만나면서, 그리고 학부모님들과 만나면서 제가 겪었던 소중한 경험은 저를 아직도 청소년과 함께 머무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어찌보면 아주 작은 일이지만 이 작은 기억이 저에게는 아주 큰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거든요... 지난 99년도의 저의 추억입니다.

==================================================================================

저는 24살이라는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이에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교리교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성가대 지도 교사로 들어오면서 제 주일학교 교사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교리교사를 해야만 성가대 지도 교사를 할 수 있다는 소리에 그건 말도 안 된다고, 난 교리교사 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발버둥치다시피 해 그 당시 동료 교사들의 마음을 무던히도 아프게 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교사가 없던 그 시절, 나이 어린 교사들은 ‘누나, 언니’ 해 가며 저를 설득했고, 결국 그들의 성화에 못이겨 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시작은 이렇게 미흡하고 부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면서 그 시절의 부족함을 메우는 데 노력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가끔 후배교사들이 그럽니다. “누나, 진작 들어왔으면 지금 9년차인데, 어디서 뭐하다 이제야 들어왔어요?”

지금까지 교사를 하면서 감사드리고 싶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들을 통해 느낀 기쁨도 많고요. 이 순간, 지난 시간의 기쁨을 조심스럽게 한 껍질, 한 껍질 벗겨 보며 기억 저편으로 잠시 돌아가렵니다. 새로운 저의 출발을 위해서 말이죠.

******** 신부님께 받은 기쁨 *********

사무장님께 주일 회합 도중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교사들에게 부탁해 놓은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화가 많이 나셨고, 그 일로 당시 교감인 저에게 호통을 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마도 주임 신부님께 좋지 않은 말씀을 들으신 것 같았지요. 사무장님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아주 격했거든요.

다른 사람한테 지금껏 살면서 큰 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는 저는 무척 당황했고 속상했지만 회의 중이었고, 10명이 넘는 교사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표정 하나 찡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함께 회의에 참석하신 신부님도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듯 통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셨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수화기를 든 저는 목소리까지 떨기 시작했고 목으로 넘어가는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짧은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리곤 얼렁뚱땅 둘러대며 회의도 부랴부랴 마쳤지요. 그 날은 공교롭게도 교사실을 대청소 하는 날이었습니다. 우울한 마음을 괜스레 걸레에 화풀이하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오늘 같은 날 하루만 더 있으면 교사 못 하겠다. 휴-”

교사회에서 하루하루 생활하기도 벅찬데 주위 분들마저 도움이 되어 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서러움이 복받쳤습니다. 교사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현우야.”

그 날 저녁, 웬 일인지 신부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낮에 무심코 뱉은 저의 투정어린 말이 신부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모양입니다.

“어머, 웬 일이세요? 집으로 연락을 다 주시구요.”
“아까 교사 못 하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죄송해요…….”

순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에 굵은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마도 죄송함, 속상함, 두려움…… 이런 감정들이었을 거예요.

“현우야, 우니? 현우야, 아이구…… 이런…….”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화제를 돌렸습니다.

“신부님도 힘드시죠?”
“그렇지, 뭐. 그래도 말이야, 내가 뜻하는 대로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괜찮아.”

순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생활의 중심은 ‘내’가 아닌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말이죠. 그 날의 감사함과 죄송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지금도 다른 본당에서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힘을 가득 불어 넣어 주시며 사목 활동을 하고 계실 신부님, 그 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 아이들에게 받은 기쁨 **********

“선생님, 제가 들게요.”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요, 저 주세요.”

허리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언제부터인가 본당 아이들도 알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학생들이 선생님의 짐을 들어주는 진풍경을 낳았습니다.

완전 군장을 한 채로 여행 캠프를 하던 어느 해 여름, 배낭과 침낭, 휴대용 가스렌지, 아이스박스 등 그야말로 모두들 자기 체격 만한 짐 보따리를 몇 개씩 들고서 힘겹게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 아이들은 제 짐을 들어주겠다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정말 괜찮아. 들고 가다 힘들면 얘기할게.”
“에이, 그냥 주세요. 허리 아프시잖아요.”
“얘, 누가 선생인지 모르겠다. 선생이 학생들 짐 들어 주는 거야.”
“아이, 그냥 주세요.”

뺏다시피 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앞장서 가는 아이들.
얘들아, 그때 너희는 진정 ‘작은 예수님’이었단다.


********** 학부모님께서 주신 기쁨 *************

풋풋하게 익은 김치 내음이 절로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합니다.

“아이고, 집에서는 다들 귀한 자식들일 텐데 맨날 라면만 먹어서 어떡한 대요?”
“괜찮아요. 김치랑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디예요.”

조금이라도 더 주시려는 듯 김치 그릇에 수북히 담긴 김치를 꾹꾹 눌러 가며 한 줌 더 집어 넣어 주신다. 그러고도 부족해 은근히 흰 봉투를 건네 주신다.

“아이고, 아니에요.”
“그냥, 받아요. 얼마 넣지도 않았어. 선생님들 뒤풀이 때 쓰라고…… 수고하는데.”

못이기는 척 받으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머리 숙여 멋쩍게 몇 번 큰소리로 인사하고는 종종걸음으로 교사실에 들어선다. 교사들이 젓가락을 빨며 김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치 없는 라면을 무슨 맛으로 먹으랴! 열심히 먹은 교사들의 이마 위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귀엽다. 후루룩 후루룩 저렇게도 맛있을까? 에고, 내 것까지 다 먹고 있네.

교사들은 이런 학부모님들의 사랑으로 훌쩍 더 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작년 해가 밝았을 때, 대희년이라는 말에 왠지 해방감마저 느꼈었다. 더구나 기간이 1년이나 된다는 말에 속죄의 기간이 이렇게 길구나 하며 마냥 기뻐했는데, 벌써 새로운 해가 밝았다. 받을 수 있는 은총이 수북한데 나의 부족함 때문에 그것들을 놓친 것 같아 왠지 허무하고 안타깝다. 어느 책에서 읽은 문구처럼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로운 은총의 비를 주룩주룩 끊임없이 내려 주고 계시는데 나는 작은 간장종지 하나만을 내놓고 그 은총의 비를 받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간장종지만큼의 은총만을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분의 품안에서 느끼는 기쁨, 그 기쁨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새해를 맞으며 기쁨을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현명함과 여유를 간구해 본다.

=================================================================================

이제는 그 때의 청소년들이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지났지만 그 때의 기쁨은 아직도 제 안에서 살아 꿈틀거리네요.

아마도 청소년들은 저에게 살아가는 큰 힘인 것 같습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4년 8월 5일 박현우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