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4 18:26
[사명/신앙고백] 약속 (백종현/20060406)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14,305  
 
 
이제 막 10대 티를 벗고
본당의 '교사 회합실'문을 두드렸던 때가 엇 그제 같은데
어느새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랐습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난 후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주일이면 당연히 성당에
가야 하는 줄 알았었습니다.
하지만 섰다가 앉았다가 섰다가.. 하는 미사전례는
저에게 무료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사이에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아
주일학교에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2-30명이 북쩍대는 교리실에서
저는 늘 주변인을 자처 했었지요..

그러다가 한때는 냉담모드에 돌입한 적도 있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고2가 되었을 무렵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북쩍대던 교리실에 친구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저를 포함해서 덜렁 5명이 띄엄띄엄
교리실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인원이 그대로 학생회 임원이 되었죠..
사실 그 상황에서도 ‘함께 해보잣!!’이라던
한 친구의 초대가 없었더라면
저는 또 팔짱끼고 관망하기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친구의 초대와 제안에
당시에 어떻게 그렇게 선뜻 응할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 저의 일상은 엄청나게 변화해 갔습니다.

일상의 가장 긴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게 되었고
(그로인해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만..-ㅗㅡa)
그 과정 가운데 또래 친구들에게서 받은 지지를 힘으로
제 안에 숨겨져 있던 많은 달란트들을 발견해낼 수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 함께 라는 의미는
사춘기의 불안하기만한 내일을 기대와 희망으로
두근거리며 기다릴 수 있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한해를 온전히 학생회 활동으로 보내고도 모자라
고3이 되어 주일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성가대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성당이 떠나가도록(괴성을 지른게 아니라..^^)
열심히 성가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이
저를 꾸준히 교회로 이끌었지요..




정서적으로 흔들리고 불안한 고3 시절
성당 안에 붉게 켜진 감실등과 친구들은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었습니다.
그렇게 한학기가 다 지나가고 있을 무렵
성가대의 베이스 파트를 맡고 있던
실업계를 다니던 친구가 수능을 포기하고
취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도 실습을 나가야 하는 사정으로 인해
본당 안에 늘 뭉쳐서 앉았던 그 자리에
그 친구가 함께 앉아 있지 못하게 된데
서로 무척 아쉬워했지요..

그 친구가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수능입시와 취업이 끝나고 나면
직장에 나가게 되든,
대학생이 되든,
재수를 하게 되든
모두 함께 교사회에 들어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희는 교회 안에서 여태까지 함께 해왔던 시간들을
앞으로도 쭈욱~ 연장하고 싶은 마음에
바로 굳게 약속을 하였죠..









그 약속을 함께 한지 채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그 친구가 떠나게 됨을 아쉬워한 후배들과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유난히 청소년미사를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던
그 친구는 결국 그렇게 영영 우리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정말 일주일이 1년 같은 깜깜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채 염이 끝나지 않은 그 친구의 입관 식에서
잠자듯이 누워있는 친구의 코에서 흘러나오던 피를 바라보며
눈앞이 깜깜해지고 또 깜깜해 졌습니다.

‘내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어른들의 무언의 질타가 어깨를 무겁게 짖눌렀습니다..
자책감은 우릴 끝없이 밑바닥으로 잡아당겼습니다..

늘 위로와 지지와 힘을 주었던 교회가
가시방석으로 변해버렸지요..

그 친구를 일찍 데려가 버린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주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듯 했습니다.

긴긴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성가대 뒷자리도 주인을 잃은 채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습니다.


이미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려
흐릿해진 기억속을 헤집어봐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누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다른 어떤 친구였는지
아니면 저였는지..

누군가 그 친구와 했던 약속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우리 수능이 끝나면 다 함께 교사하자!’






그 약속은
어둠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빛이 되었습니다.

이미 그것은
계속 함께 재미나게 뭉쳐 다니기 위해 했던
철없는 소년들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 약속을 붙들고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우리는 조금씩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서서히 주변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입시가 끝나고 결과도 모르는 상황에 저희는
무턱대고 교사회합실 문을 두들겼고
여차저차 해서 지금에 이르렀지요..ㅋㅋ










주님께서는 환난에 빠진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길을 보여주시고
또 이끌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와의 '약속'이 처음에는 저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지금은 그 약속이 작은 씨앗이 되어
더 큰 열매들을 꿈꿀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때의 친구들과도
이제는 아주 가끔 만나게 되었고
만나도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고민과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대화가 오고가지만

한때 함께 모여 앉아 미사를 드렸던 추억을 되새길 때면
모두 한마음이 됩니다..
*^ㅡ^*


주님께서
저를 통해 어떠한 일을 하실지..
저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잘은 모르겠지만
새삼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울 어머니를 통해
코흘리개 철부지 꼬맹이를
교회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친구를 통해서
늘 주변에 머무르고 있던 저를
공동체로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래 친구들과
그들과의 ‘약속’을 통해
어둠 속에서 빛으로 이끌어주시고
다시금 당신의 도구로써 쓰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6년 4월 6일 백종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