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것은 제가 좋아했던 교사가 교사회에 들어 도지 않는다며 아는척도 하지 않은것이 무서워였습니다.
교사라는 공동체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달리 마찰과 갈등이 많고 상처도 많은 그런 곳이였습니다. 그러한 단체 속에서 전 교사로서의 사명이란 있지 않았던건것 같습니다.
그냥하니까 하는것 나만 기쁘면되는것 그렇다보니 저는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가르치고, 또 학생들과 후배교사들의 이야기를 기쁨으로 들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전 정말 행사만 환벽하게 준비하고 결과를 중시라는 철저한 일적인 교사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로 인해 상처 받는 교사들이 한 둘이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의 상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힘들면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밥먹듯이 했습니다.
사람은 무언가 큼 사건이 있어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잘못됨을 깨닫듯 저에게도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2000년 12월 24일새벽 병원의 오진으로 엉뚱한 치료만 받으시던 아버지께서 암선고를 받으신지 2주만에 하느님 품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오빠와 전 아직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찾아 오는 이 별로 없을 초라한 아버지의 빈소를 생각 하며 아버지이 영정사진을 끌어 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3일 장을 치루는 동안 저희 세 가족과 친척 분들은 모두 깜짝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당의 어르신들께서 연도를 드리시려면 한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할 신부님 수녀님 교사들 학생들... 우리본당 뿐아니라 옆동네 본당의 신자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옆에서 같이 상을 치루시던 상주분께서 "살아 생선 이분은 무엇을 하셨던 분이시길래 각 성당 마다 씨가 마른 청년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냐?" 며 물어 오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무어라 말로 할 수 없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거 아버지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을 이렇게 풍성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집했습니다.
당신께 받은 이 큰 은총과 감동, 그리고 기쁨을 당신께서 필요로 하는 곳에 도구로써 다시 사용하겠다고 말입니다.
그 후로 많은 생각들이 바뀌었습니다. 교사라는 봉사직을 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놓기가 싫어 졌습니다. 교사라는 봉사직이 너무 좋아 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느님의 일꾼으로 봉사하는 크기는 아주 작을지 모르지만, 저의 기쁨이 빛이 다른 교사와 청소년들을 비추어 함께 기쁘게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싶은것... 그것이 저의 교사로서의 사명입니다.
때론 지친 교사들이 제게 에너지가 필요할때 밧데리를 충전하듯 찾아 오기도 합니다.
그것도 제겐 큰 기쁨입니다.
오데는 많은 교사분들과 기쁘게 봉사 하고 싶습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4년 9월 5일 오유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