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은 동영상을 볼 때도 ‘정상속도’로 보지 않는다.
재생속도를 몇%~몇백%씩 빠르게 돌려보는 게 보통이다.
2시간 분량의 영화를 2배속으로 돌려 1시간에 보는 식이다.
청소년들끼리는 동영상을 재생시켜 보는 속도에 따라
‘평민’과 ‘고수’가 갈리기도 한다.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닷엑스(.X)’ 세대의 등장으로 보고 있다.
닷엑스는 닷컴(.com)의 ‘닷’(.)과 배속(속도)을 의미하는 ‘X’의 합성어다.
닷엑스 세대는 정상 재생속도에 익숙한 기성 세대와 달리
동영상을 빠르게 보는 청소년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닷엑스 세대는 온라인 강의사이트에서 먼저 등장했다.
온라인강의업체 메가스터디가 지난달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업체 회원 10명 중 7명이 강의를 정상속도보다
빨리 듣고 있는 것으로 11일 나타났다.
전체의 29%만 ‘정상’ 속도를 이용했다.
69%는 1.2~2배속으로 수능강의를 들으면서도 별 불편 없이 강의를 소화했다.
손은진 메가스터디 본부장은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이 한정된 시간에 많은 양을 학습하기 위해
강의 속도를 높여 공부하는 게 유행”이라며
“적어도 1.6배속 이상으로 강의를 틀어놓고도 말을 알아들어야
‘인강(인터넷 강의) 고수’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설명했다.
포털 사이트들도 이런 세태를 반영해 드라마·영화 등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 때 재생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영상포털인 판도라TV의 경우 32배속까지 지원한다.
포털 업계 한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빠른 재생속도에 익숙해지면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 듣고 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이를 ‘표준의 파괴’로 보고 있다.
일반적인 서론·본론·결론이나 과거·현재·미래 같은 전통적인 구도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파괴되고 있다는 것.
성역으로 여겨졌던 ‘시간’이 동영상 재생속도를 빠르게 함으로써
‘축약’과 ‘건너뛰기’ ‘단축’이 가능해지면서 ‘디지털’이라는
환경을 통해 시간을 지배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존 스토리의 전개 방식과 다른 방향으로
이해하려는 게 디지털 세대의 특성이라는 설명이다.
권상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닷엑스 세대들이 속도 조절을 통해서 원하는 것에 답하고
원하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현상은 기성세대가 과거에 공유했던
‘컨먼센스’가 없어지는 현상이지만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기성 세대가 볼 때 닷엑스 세대가 표준의 파괴를 통해
전통적인 질서나 권위에 도전하는 듯 비쳐지지만 디지털로 바뀌는 과정이라는 것.
예컨대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석기인 입장에서는
석기(표준)가 바람직한 것이지만 청동기인에게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권교수는 “닷엑스 세대가 속도를 높여 빨리 봄으로써 표피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교육·윤리적 장치로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주현기자
amic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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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24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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