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5년 간 몸담았던 본당 교사회를 퇴임하면서, 본당에서 발행하는 본당 소식지에 글을 싣게 되었어요 ^-^ 5년 간의 시간을 짧은 분량 안에 다 담아내려니 너무 힘들어서
몇날 며칠 고민하면서 쓴 글이랍니다 ㅋㅋ ^-^

본당 소식지에 실을 글이라 저의 경험과 깨달음이 본당 위주로 쓰여진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고 또 많이 배운 곳이다보니 그대로 옮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이곳에도 살짝 옮겨 담아 봅니다 ^ㅡ^

(앗. 저작권법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요! 아직 그 소식지가 미발간 상태이긴 하지만.ㅋㅋ
뭐 저자?! 는 저니까 괜찮겠죠 흐흐. 좀 길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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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

지난 주일 아침, 문득 책꽂이 한 켠에 꽂아둔 다섯 권의 교사 수첩을 꺼내 보았다. 색깔도 크기도 다양한 이 수첩들 안에는 지난 5년 간 교사 공동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녹아 있었는데, 이제는 기억조차 아련한 철없던 신입 교사 시절의 것부터, 그 시간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 가장 손때가 많이 묻은 교감 시절의 것까지, 수첩들을 넘겨보며 나는 소중했던 지난 시간의 추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5년 전, 갓 대학 새내기가 된 나는, 성당에서 무언가를 해보고픈 의욕에 가득 찼다. 주일학교 시절, 나름 잘 나가던 (?) 학생이었기에 당시 선생님들은 많은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나는 괜히 비싼 척을 하며 시간을 끌다가 결국 교사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무척 즐거웠고 또 설렜지만, 그 시간을 준비하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나는 학생 시절 바라보았던 교사회와는 또 다른, 그 이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가 경험한, ‘정말 재미있고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주일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은 열정은 가득했지만, 당시 교사회에 시간을 내어놓고 마음을 다하려는 생각은 부족했다. 내게는 교사 활동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대학 생활이 재미있었기에, 이 둘은 때때로 시간적·가치적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이는 종종 나를 어려움에 빠뜨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대학 첫 학기를 보내고, 여름 캠프를 가게 되었다. 한 달 여를 매일 성당에서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캠프는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게 되었고, 나는 '레크계의 지존’이라는 별명을 얻는 영광(?)도 누렸다.

행복했던 그 해 여름의 기억으로 한 발만 담그고 있었던 교사 공동체에 마음이 가는가 싶더니, 얼마 후 나를 둘러싸고 발생한 갈등으로 인해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의사소통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내 하고 싶은 일만 생각했던, 부족했던 내 모습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시 어려움이 많았지만 적어도 1년은 채우고 그만 두어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어느 새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이 때, 나와 동료 몇몇은 교구 주최의 ‘초급교사연수’에 참여했는데, 이 연수는 내게 회심의 기회가 되었다. 나는 연수를 통해 내가 ‘하느님과 청소년’에 관심이 있고 또 교회의 일을 할 때에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것을, 또 ‘활동’에 온통 마음이 쏠려있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하느님께로 돌아서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 그 연수를 통해 맺어진 다양한 네트워크는 이후 교사 활동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고, 특히 본당 교사회를 넘어, 청소년 사목의 비전과 사명에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그 이후 나는 보고 배운 것들을 본당 공동체에 적용해 보고자 하는 열정에 가득 찼고, 여러 시도를 해 보았으나 여전히 나는 경험이 부족했고, 시간과 노력의 기여 역시 모자랐다. 여전히 학교생활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기에, 제안은 하고서도 제대로 실행을 못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조금은 급작스럽게 학교와 전공을 바꾸어 새로 입학을 하게 되었고,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3년차 교사가 되면서, 나는 아주 조금씩 마음을 비워내며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교사를 시작하며, 나는 ‘내가 한다면’ 단기간에 활성화된 주일학교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가득 찼었다. 솔직히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특별히 큰 아픔의 경험이 없이 살아왔던, 논리와 이성 중심의 나는 ‘input'과 'output'의 철저한 인과 관계를 믿어왔다.

그런데 교사 활동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이는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큰 체험이었다. 비록 그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인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말이다. 또한, 내가 다 채우지 않아도 누군가가 채워준다는 것을, 특히 하느님께서 해주신다는 것을 알았고, 자존감이 강한 내가 하느님께 조금씩 맡길 때에 오는 행복감도 짜릿하게 맛보았다.

‘투입과 산출 공식’이 잘 적용되지 않는, ‘사람’ (청소년)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초대하는 일은, 아쉬울 것 없이 잘 살았던 내게 정말로 간절한 아쉬움을 불러 일으켰고, 그럴수록 이 일에 더욱 투신하고 싶다는 갈망이 커져갔다. 또래 대학생들처럼 어학연수나 전공 공부 등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일들이 내게도 무척 많았지만, 그 갈망이 나를 더욱 목마르게 했고 또 행복하게 했다.

이러한 와중에, 당시 야고보 신부님은 내가 하느님께 가까이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고, 내 안에 존재하는 신앙의 불꽃을 밝혀 주셨다. 말씀에 맛 들이고 마음이 움직이며 나는 그 신비에로 더욱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의 흐름이 있다고 해서 나의 인간적인 결점이 쉽게 극복되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 때로 동료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고 스스로를 달달 볶아대기도 했다. 신앙 역시 상승세를 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의심과 회의감에 사로잡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늘 ‘기회’를 주셨고, 그 기회를 통해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며, 나는 그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심을 어느 순간부터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되었다. 내게 주신 참으로 많은 것들에!!

그 이후 바오로 신부님이 오시면서, 중고등부는 청소년 지역 공동체를 조직하고 성경 중심의 교리를 진행했는데, 우리 교사들은 많이 부족했지만 청소년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참 열심히 했다. 늘 기대가 높은 나머지 싫은 소리도 많이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가장 적절한 사람들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특히 ‘무엇이든 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보낸, 교감으로서의 지난 한 해는 정말이지 치열했고 때론 너무나도 힘에 겨워서 당장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신뢰를 보여주신 바오로 신부님과, 나를 걱정하고 사랑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후회 없이 그 시간을 보내고 또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사랑하는 공동체를 떠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았고 많은 소용돌이가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지금의 교사 퇴임이 끝이 아니라 청소년 사목자로서 평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 되리라 믿으며,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성실하고 기쁘게 걸어가리라 마음먹어 본다. ‘나를 키운 8할’이며 ‘내 젊은 날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을, 반포4동 중·고등부 교사로서 보낸 지난 5년은 정말이지 행복했고, 또 그 기억으로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난 시간 동안 나를 많이 걱정해주시고 사랑해주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온 동료 교사들, 그 순수한 웃음으로 나를 하느님께로 인도해준 청소년들, 한참이나 어린 나를 깍듯이 존중해주신 많은 학부모님들과 성당 어른들, 거의 성당을 집처럼 드나드는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신 존경하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다. 또한,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나를 스쳐간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이제는 그들을 위한 기도로서 그 빚을 대신 갚으려고 한다. 비록 하느님 일을 빙자한 나의 일을 한 경우도 참으로 많지만, 하느님과 교회의 일을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하고 또 빛나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그 행복 놓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로마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