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4 19:29
[사명/신앙고백] 거저 받았으니.... (이세라/20081121)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5,901  
 
‘어둠’이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에게 고백이랄 것이 있을까마는... 많은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처럼 핵심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허락된다면 조금 길어져도 괜찮겠지요?? 이 이야기들을 빼고는 지금의 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꼭 할래요. ^^; 또한 이는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다른 누군가가 있어야 '고백'이라 이름붙일 수 있을테니... 그렇다고 고백이라 하기에는 그냥... 살아온 이야기, 하느님을 믿고 자라온 이야기라 생각해주세요.


#1. 양남마을 공소 시절

정말정말 작은 공소(크기가...가톨릭회관 소강당 반만한??)에 다녔어요. 일주일에 한 번 먼 곳까지 찾아오시는 부제님의 교리를 듣고 지금은 대구교구 주교님이신 최영수 신부님으로부터 첫영성체를 했지요. 한 달에 한 번 신부님께서 미사하러 오시면 첫영성체 받은 지 얼마 안 된 촌놈^^들은 차 뒷자리에 앉아 운전석의 신부님께 고해성사하고 맛없다 불평했지만 여하튼 성체를 받아모신다는 설레임에 그 쪼꼬만 공소 앞에서 폴짝폴짝뛰곤 했어요. 사람도 별로 없는 공소에서 주송도 했다가 성가도 불렀다가... 그때까진 아름다웠지요. 아름다웠어요. ^^


#2. 신림동 성당에서 3분 집 시절

분명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바탕이지만 그때는 정말 죽기보다 싫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6학년 때 신림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부모님께선 성당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집을 얻으셨고 성당이 집 가까이에 있는 기쁨을 저희에게 전달하기 시작하셨지요.
집 뿐만 아니라 학교도 성당 바로 뒤에 있었어요. 아침에 저를 학교에 보내는 엄마의 인사는 ‘성당에 들렀다 와~!’였어요. 기도할 게 없어도 5분만 앉아 있다 오라셨거든요.(그보다 더한건 사순절엔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ㅗ-aaa) 재미있는 것은 하란다고 한거에요. 싫다고 징징대면서도 엄마한테 거짓말하기(안가고서는 갔다고 하기)는 무섭고 더 무서운 건 성당에 안들리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고 말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없는 성당에 앉아서 ‘예수님, 나 여기 오기 싫어요!’라고 매일같이 기도(?)했어요.
매일미사 문제로는 엄마와 매일같이 싸웠어요. 당시 신림동 성당엔 월요일만 빼고 저녁 7시에 미사가 있었어요. 그리고 저와 제 친구들이 열광하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은 6시 30분에 시작해서 50분에 끝나게 되어있었구요. 저는 만화 끝나면 성당에 갈 생각인데 엄마는 40분부터 “미사가야지~”하셨어요. 엄마는 10분동안 가야지가야지 얼른가! 하시고 저는 갈거에요갈거에요 간다구!! 하면서 매일 저녁 전쟁을 치렀어요. 아... 힘들었어요. (어디 딴데가서 놀 생각은 왜 못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죠. 신림사거리는... 청소년을 위한 곳은 아니거든요.^^) 그런 생활과 맞물려 저는 그만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경계학생 1호가 돼 버렸어요. 선생님들도 안오는 평일미사에 매일 오는 학생이니...^^;; 거기다가 여러 만화책을 읽으며 이미 홀로 학습된 교리 실력(?)이 선생님들의 그것을 능가했었거든요. 매일미사는 제가 고등학생이 되고 저녁미사가 없어지면서부터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만 저의 장래희망이 수도자라는 제 입으론 단 한번도 말하지 않은 장래희망을 모두가 기정사실처럼 여기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네요^^;;


#3. 청소년 사목의 엄청난 수혜자 시절

늘 있는 학교, 성당을 벗어나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평소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지내보고 싶었고 일상에서도 좀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어요. 혼자이긴 하지만 청소년대표자연수에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연수 입소 당일에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어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일탈이라 생각하고 갔지요. 그 결과는 가히 놀라울 정도였어요. 아예 사고방식이 확 바뀌어졌으니까요. "앞서행하고...", "놀때는 푼수처럼..." 등등 주옥같은 청소년 사목의 기본 규칙들을 열심히 필기하면서 비오신부님의 강의를 듣던 그 설레이던 마음은 두고두고 잊혀지질 않아요. 그러다가 고 2때는 단 두 명의 청소년이 함께 했던 WYD 서울교구 팀에서 그 두 명 중 한 명이 되어 커다란, 하나인 가톨릭교회를 체험했고 돌아와서는 3회 청소년 큰잔치에서 신앙고백까지 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어요.
그러다 그해 겨울...갑자기! 십자가 위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시오? 라고 물었어요. 겁도없이... 내가 왜 안보이는 당신을 믿어야 합니까. 종교는 왜 있습니까. 등등...그때 생긴 신앙에 대한 회의심이 꽤 오래 갔던 걸로 기억해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저는 냉담을 선택할 용기(?)는 없었어요.


#4. 고딩 졸업후

각종 신앙ㅋ 활동경력으로 대학에 합격하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청대연 동반만 하고 발을 빼려 했었어요. 그날도 다름없이 청대연을 준비하러 갔는데, “교사하니?”라고 비오 신부님께서 물으시는 거에요. “아니요.”라고 했다가 “너 이기적이구나.” 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어요. 난 중고등학교 애들 좋아하지도 않는데, 걔네들이랑 나이차도 얼마 안나는데, 하느님을 믿고 있다고 확신하지도 못하는데, 내가 무슨 수로 선생님 소릴 듣나, 내가 어떻게 애들에게 하느님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안하면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만 같아서 교사생활을 시작했고 4년 반을 열심히 봉사했어요. 제 삶이 저 혼자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어요.


#5. 튀니지 어린이 캠프

프랑스 살레시오 수도회 수녀님들이랑 신부님이랑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어린이들 캠프를 하러 튀니지에 갔었어요. 말도 잘 안통하고 체계도 없는 그쪽 상황을 만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제가 청소년사목의 현장(본당이든 교구 연수든)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실행했었나봐요. 캠프가 끝나고 헤어질 때, 너희(저와 같이 참여한 한국인 언니)를 데려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신부님만이 아니라 하느님도 같은 마음이시길... 내가 여기 있고 나를 이런 방법으로 쓰고 계시니 후회하지 않는다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게된다면 참 좋을 것 같았어요. 하느님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해보았어요.


#6. 대학 졸업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54일기도를 하겠다고 묵주를 들었어요. 일생을 통해 투신할 일을 주시지요, 라구요. 그 54일 기도 중 청원기도가 끝나는 날, 햇살을 방문하게 되었어요. 전부터 정동떼제기도모임이나 CAFE 등으로 끊임없이 저를 초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전에 '하얀머리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열정을 잃지 않을'이라 신앙고백한 어느 분처럼 나의 일. 곧 하느님의 일이자 교회의 일을 만나는 때가 왔다고 믿었어요.


##.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아무 노력없이 거저 받은 것 같다는 생각에 감사함을 넘어서서, 되려 '어떻게든 알아서 해주실거야.'하는 겁없이 교만한 마음에 빠져들기도 했어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까지도 말이에요.

신앙고백에 이어 그렇다면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보았어요. 그러다가 받은 것이 너무너무 많아 이 삶이 아니라면 다 돌려드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더 이상 안일한 자세가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가고자 하는 치열한 마음을 가져야만 사명도 사명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사명.

예전엔 내가 잘 살아서, 살아가는 모습 그것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완벽해지는 것에 초점을 두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나서 저... 위에 요한보스코 성인의 말씀처럼 청소년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느님이, 이 교회가 청소년 너희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그들이 또다른 하느님의 일꾼으로 자라나는 거죠. 저의 지난 시간들 중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청소년기(그리고 그것은 청소년사목의 하나의 열매였어요.)에 그 기쁨을 가득 채워주셨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당신의 큰 은총을 '어둠'의 그늘 아래 있는 마음이 가난한 친구들에게도 주실 것을.... 믿어요.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8년 11월 21일 이세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