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4 19:31
[사명/신앙고백] 한지훈 베드로의 신앙고백 (한지훈/20081208)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5,727  
 
나는 의심이 많은 아이였다. 본당에서 복사를 할 때 친구들과 대판 싸운 적이 있다. 복사를 하는 다른 친구들은 성체의 신비를 굳게 믿는 눈치였다. 성합 속에 든 제병은 원래 서너개 뿐인데 축성하고 나눌 때마다 새로운 조각이 생겨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부족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를 나름대로 응용한 셈이다. 나는 믿지 않았다. 영성체 시간에 옆에서 봐도 성합이 터질만큼 성체가 가득했고 때로 부족하면 제대로 가서 채워오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신앙에는 본래 의심이 많았고 그래서 친구들과 혹은 내 자신과 여러번 갈등했다. 17살이 되던 해 복사를 그만두고 성가대에 들어갔다.

청소년 주일미사 때 기타 반주를 맡았다. 중고등학교를 내리 남자 학교만 다녔던 나는 성격마저 내성적이어서 여자 아이들을 보면 내외하기 바빴다. 성가대엔 여자애들이 많았고 무척 수다스런 분위기여서 적응이 어려웠다. 성가대에 함께 있던 여동생까지도 낯선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시절 내 신앙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공동체에 깃들기보단 방문을 잠그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식이었다. 그러다 대학에 갔다.

의심이 많던 아이, 공동체보다 혼자가 편하던 아이는 대학에 가서 운좋게 햇살 공동체를 만났다. 막 농활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여름, 학교에서 하던대로 호주머니에 칫솔 한 자루만 꽂아넣고 햇살 엠티에 따라갔다. 그 때 온양 성당에서 함께 드린 공동체 미사를 잊을 수 없다. 성수예식도 좋았다. 의심의 고삐를 모두 풀어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공동체가 얼마나 따듯하고 포근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매주 수요일 수업을 마치자마자 혜화동으로 달려갔다. 그해 겨울, 초급교사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받고 얻은 축복은 신앙이라기보단 겸손이었다. 의심없는 신앙은 먼 길이었다. 다만 이제 좀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음을 여는 데 완고해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는동안 햇살 공동체가 늘 동반해주었다. 내가 따랐던 누나 형들은 소주를 사주거나 밤늦도록 메신저로 내 고민을 들어줬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명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와닿는 바가 있었다. 가끔 예전 버릇이 불쑥 튀어나와 모임을 기피한 적도 있었지만 신앙은 그러는 사이에도 조금씩 깊어져가는 듯 했다. "현실 때문에 비관하더라도 사명으로 낙관하자"며 주제넘게 독려하기도 했다.

군대에 가서 비로소 내 신앙의 약점을 알았다. 난 그동안 의지할 곳이 다양했고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았다. 세상의 눈으로 하느님을 대했고 못마땅하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훈련소는 메마른 곳이었다. 동기들과 초코파이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긴 했지만 훈련을 마치면 뿔뿔이 흩어질 인연이었다. 훈련소 안에 있는 성당은 주일마다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외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삼종기도를 바치고 불침번을 설 땐 총을 매고 묵주알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떠나온 공동체를 향해 필사적으로 편지를 써댔다. 답장이 오면 편지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다. 의정부 보충대에서 받은 "어마어마했던" 크리스마스는 카드는 나중에 아들한테, 손주들한테 대대로 보여주고 자랑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듬해 도착한 미군부대는 훈련소와 딴 판이었다. 머지않아 절실함은 사라졌고 깊었던 내 신앙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부대에서 미사를 드렸지만 영어 미사라 복음도 강론도 별로 와닿지 않았다. 순식간에 햇살 공동체와 멀어졌다. 그동안 공동체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생겼고, 나는 다시 의심많은 아이, 공동체보단 혼자가 편한 아이로 돌아갔다. 제대하고 나서도 그렇게 됐다. 복학과 취업준비는 발등에 떨어진 불 같았다.

나는 지금 이 신앙고백과 바짝 맞닿은 연장선 위에 서 있다. 방송사 PD가 되고자 했던 오랜 꿈은 코 앞까지 왔다가 사그라드는 신기루 같았다.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라고 기도했으나 속으로는 주변의 기대와 내 욕심 때문에 조바심을 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것을 깊이 생각해보기 위해 나는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로 했다. 공동체를 통해 내가 다시 겸손을 배우고 신앙을 갈구하기를. 늘 그래왔듯 신앙에 대한 내 온갖 말들에는 신빙성을 지켜나갈 자신이 통 없으나 또한 늘 그래왔듯 부족하고 미약한 부분은 당신께서 채워주시리라 믿는다.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마르코 9장 24절)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8년 12월 8일 한지훈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