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4 19:31
[사명/신앙고백] My Life Story~~~.^^. (이승룡/20081210)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15,419  
 
안녕하세요.
이승룡 세례자요한입니다.

'나의 이야기', '사명&신앙고백'...
막상 글을 올리려니 좀 부담스럽더라구요...
매번 나눔 때마다 하는 얘기 또 하려니 지겹기도 하구요...

문득, 예전에도 비슷한 자기 소개 글을 쓴 것 같아서 햇살 사이트를 다시 뒤져봤습니다...
역시나...있더라구요.^^.

어떻게 지금의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운이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지...
할 얘기는 다 했더만요...^^;;;

그런데, '일기'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어찌나 엉성한지...^^;;;
그래도, 재미는 항상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튼, 햇살 사이트에 올렸던 '엉성하게 느껴지는' 글을 다시 첨삭하는 맘으로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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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친가쪽도 외가쪽도 모두 가톨릭으로 기억이 되고,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아침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머니의 기도 덕택에 이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초등학생 때는 부모님의 반 강제와 당연히 가야하는줄 알고 그냥 맹목적으로 주일학교를 갔었습니다. (전, 그냥 시키면 했었거든요...)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귀가 얇아서 교리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그냥 믿고 배웠었습니다.

아니, '믿는다'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지식으로써 거의 기억했다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수업받으면서 배우는 것들이랑 똑같이 인식했었죠...
또, '선생님'이라는 권위에 절대적 복종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정말 그런거다 하고 그냥 받아들였던거죠...

하지만, 성당에 제가 가고 싶어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요일 아침마다 AFKN에서 하는 만화를 보고 싶어 했었거든요.
물론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미키마우스가 나오거나 로드러너가 나오는 만화는 말이 필요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해방감과 함께 주일학교 및 성당으로부터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의 암흑기였던 중학교 생활......
전 항상 저의 중학교 시절은 '암흑기'였다고 얘기합니다...
특히 중학교 1학년 때...
괴롭힘을 받았던 기억이 많습니다...아주...

왜 그랬을까요?
왜 '그들'에게 타겟이 되었던 건지......

저는 그 때, 세상을 흑백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놈'과 '나쁜 놈'.
'좋은 편'과 '나쁜 편'.
'우리 편'과 '나쁜 편'.
'군자(대인)'과 '소인'.
'상대해야 할 사람'과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
'본 받아야 할 사람'과 '무시해야 할 사람'......

그 때까지 봤었던 책들이 다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은연 중에 '그들'을 무시했던 것 같고,
무시당하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한 '그들'이 그렇게 저를 괴롭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죠, 뭐...'그들'을 다시 만나서 물어보지 않는 다음에야...
하긴...'그들'은 그런 일을 기억도 못 하겠네요......

아무튼, 그 당시 '이지메'라는 말도 없었던 때에 '자살'까지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마침, 학교가 한강이랑 가까웠거든요...
'자살'이라는 것을 바보같은 짓이라 생각하며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었는데, 제 자신이 그러는 것에 대해 어이없어 하기도 했었습니다.
막상 자살할 마음을 먹었다가도, 그렇게 내가 사라지고 난 뒤에 남게될 나와 가까운 사람들, 특히 슬퍼하실 어머니가 생각나서 단념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할 수 없이, '그들'을 속으로 저주하면서 겉으로는 그냥 참고 하루하루를 보냈었습니다.

음...
무척이나 괴로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괴로움을 그저 참기만해야 했었기 때문에,
그 때부터 생각이 참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을 믿다가도 한번 의심하게 되면, 끝도 없는 의심으로 이어지게 되는 버릇도 갖게 된 것 같구요.
그 때, 그렇게 힘들었기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단 한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때 그 일들로 인해 제가 처음으로 저 스스로 성당을 찾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서 되새겨보면, 그 시절의 괴로움들이 하느님께서 안배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다시는 성당을 안 나가려고 하던 놈을 1년만에 어쩔 수 없이 성당 문을 넘도록 만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의 '신앙'이란 당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기억하고는
'예수님도 그렇게 자기를 죽인 사람들을 용서했는데, 나를 죽인 것도 아니고, 나를 괴롭힌 것쯤 나라고 용서 못할게 뭐 있어...'
라는 생각을 했던거죠.
'용서'란 의미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만, 그렇게라도 자기 위안을 얻었기에 그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왕 그 '예수님'만큼은 안되더라도 비슷하게라도 따라가려면,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하지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미사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미사 중에 잘못했다고 빌기도 하구요.

그 때, 가장 좋아했던 기도문이 '~다른 이를 제가 용서한 것처럼, 저를 용서하시고~'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나를 괴롭힌 녀석들을 용서할테니, 저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했던거죠.
그리고, 좋아했던 싯구절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이었습니다.
막상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는가를 생각해보니까 알게 모르게 저의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더라는 거죠.

그렇게 중학교 2학년 시절을 보내다가, 제대로 믿으려면 미사뿐만이 아니라 주일학교도 나가야 한다는 신부님의 강론 말씀에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주일학교를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중3 때부터 시작한 주일학교 생활...
지금의 저의 모습이 있게 된 첫 시작이었죠.^^;
'신앙활동'과 관련된 틀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생관'을 바꾸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내 '그루터기 신문부' 활동을 하면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고,
인기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그 친구들처럼 외향적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난 나야' 였었거든요...)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주일학교 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지금처럼 'support' 생활에 물들었었고,
조금씩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 결과, 대학교 입학식도 하기 전에 교사회에 들어갔었고, 학교에서는 반대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쯤 기존의 내성적인 성격도 많이 외향적으로 바껴져 있었습니다.
'Leadership'에 대한 관심도 갖기 시작했던 것이 이 때부터였습니다.

그리고, 2학년 올라가던 그 해 2월에 걍~ 군대를 입대했습니다.
그 전부터 갖고 있던 인생 계획에 의한 자원입대였죠.
그 때, 군 생활 중에 'Followership' 이란 용어를 처음 접하고,
아, 이거구나...내가 해야할 것이, 내가 선호하는 것이 이거구나 했습니다.

군 생활과 아르바이트의 3년간의 공백을 마치고 다시 교사회로 복귀했을 때쯤에는
저 스스로 난 '운'이 참 좋은 놈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니,
실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음에도 대학수능시험이 가장 어려웠던 때라 운좋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대학 1학년 마치고, 자원했었던 공군 보직도 같은 특기로 지원했던 120명 중 11명에 선택되어,
'공군 3대 화이바' 중 하나인 그야말로 군생활 편하디 편한 보직을 받고 생활을 했었던거죠.

그야말로 애국가에 나오듯 '~하느님의 보우하사~', 제가 알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끌어 주시는 분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하느님이 보우하시는데 '운'이 안 좋을 수 있겠어요?

교사회에 다시 복귀하고나서 6개월 뒤, 2002년도 초급교사 연수 때,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신앙적 체험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것에서 오는 행복, 내 자신을 온전히 비웠을 때 찾아오는 해방감, 나 자신을 죽임으로써 얻게 되는 부활 체험......

중학교 시절, 평생 잊을 수 없는 단 한명의 친구와 나눴던 생각...
'신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릴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초급교사 연수의 '화해의 성사' 때의 기억은 아직도 기회가 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경험을 해보게끔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현재 냉담의 시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줄기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2002년도 초급교사 연수 때 처음으로 '떼제'를 접하고,
그 때부터 떼제 손발이를 시작했습니다.

떼제 손발이를 하면서 연수 때, 많은 신부님의 강의를 공짜로 들을 수 있었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때 저도 모르게 양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 제대 후 다시 시작했던 중고등부 교사회는 2003년 초에 취업 준비한다고 그만 두고,
떼제 손발이 활동도 2004년 중반 쯤에 직장에서 신입으로서의 생활때문에 그만두고 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시작된 '냉담 생활'...
빡빡하게 주말을 보내다가 한가하게 되어 좋다는 것도 2년을 넘어서면서,
어느새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간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말라 갔던거죠...
아무래도 회사랑 집만 왔다갔다 하다보니 당연했던 것 같습니다.

성당에서 신앙 활동을 하고 싶어도 미사에 대한 참여가 뜸해진 상태였고,
평일에는 참석이 어렵다보니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시작도 미루고 단념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떼제 CD 녹음을 할 때 신부님께서 밧줄을 던져 주십니다.
토요일에만 나와도 된다는 그 한마디에......그냥 넘어갔죠.^^.
그래서, 떼제 손발이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아주 모범적이진 않지만, 떼제 손발이로 모임에 갈 때마다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가곤 합니다.
직장에서 찾기 힘든 보람을 이 곳에서 찾겠다고...
긴 인생에서 이 곳이라면 내가 무언가를 남길 수 있을거라고...
나중에 이 곳에서 옛날 학교의 경비원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그리고......
내가 느꼈던 '진정한 행복'을 나눠줄 그 '주위 사람들'은 이제 '청소년'...'저보다도 어린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의 경험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될 그 때를 조용히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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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한 3시간 걸렸네요...^^;;;;;;

혹시나 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들...대단하신 겁니다.
어디 가서 '인내심'없다는 얘기는 안 들으실 겁니다...^^.ㅎㅎ

여기에...또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오늘처럼 이야기를 추가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때도 오늘처럼 한가지 주제가 아니라, 주저리 주저리 글을 늘어 놓겠죠...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여기 있는 글에서 필요한 부분만 꺼내서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구요.^^.

그럼 이만......
전 자러 갑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8년 12월 10일 이승룡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