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4 19:32
[사명/신앙고백] 주님께서 저를 보내시어.. (이희연/20081217)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5,748  
 
주님께서 저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게 하셨습니다. (이사 61,1 참고)



# 1986년 - 그때부터..

86년 8월 리마의 성녀 로사 축일에 태어나서, 모태신앙으로 성당을 나갔다.
89년 '로사'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대학생 시절 가톨릭학생회에서 만나 성당에서 결혼하신
회사원인 아버지와 고등학교 선생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다양한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며 섞여있는 집안에서
불교신자인 할머니 손에 자란 시간이 더 길었다.
하지만 나는 성당에 가는 것이 좋았고, 성당에 가겠다고 선택했다.
주일학교도 내가 먼저 보내달라고 졸랐다. 고집을 부려서 나가기 시작했다.
툭하면 성당으로 달려가곤 했다. 기뻐도 슬퍼도. 외로운 날이면 더더욱.
그때부터 그랬다. 내가 하느님께 낚인 것은.


# 1995년 - 예수님을 만나다.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 교리를 들었다.
하루는 관상기도를 배웠다. 감실 앞에 친구들과 쪼로록 앉았다.
수녀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눈을 감고 기도했다. '예수님, 제게 오세요.'
머리부터 따뜻해지는 느낌. 축복해주시는 그분의 손이 내 머리에 얹힌 것 마냥.
내 앞에 누군가 서있다는 확신. 그 누군가가 예수님이라는 믿음.
하느님이 정말 계시구나. 예수님이 내 곁에 정말 계시구나.
그 이후의 나는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 1997년 - 제대 가까이.

첫영성체 이후 복사를 서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새벽미사에 가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다.
5학년이 되어서야 내게 복사단에 들어갈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매일 새벽 미사에 나갔고, 복사단에 들어갔다.
제대 가까이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기쁨. 예수님께 더 가까이 있다는 기쁨.
그 달콤함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 1999년 -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

어머니는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라며, 교구 청소년 큰잔치의 봉사활동을 권유하셨다.
나는 별 생각없이 하느님이 던지신 그 미끼를 덥썩 물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에 목소리나 묻어가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가대인 줄 알고 신청한 것이 액션송이었다.
액션송을 하면서 나는 또다시 제대에 가까워졌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가까이 섰다.

청소년 큰잔치의 자원봉사자 발대미사가 있던 날도 그랬다.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면서 자원봉사자들이 제대주위로 모여 섰다.
나는 제대를 사이에 두고 사제와 마주 보았다. 그리고 나는 무릎을 꿇었다.
사제의 손으로 투명한 잔에 담긴 그리스도의 붉은 피가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그 안에 비춰진 많은 청소년들과 동반자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여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절대 그리스도를 떠나 살지 않겠다고, 신앙 공동체를 떠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 2003년 - 단 한 사람.

2003년이 되기 전 가을, 조재연 신부님은 나를 부르셨다.
"네가 받은 선물을 이젠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니? 너는 좋은 메세지를 갖고 있단다."
그렇게 나는 CYA 교구 회장단 선거에 나갔고, 부회장이 되었다.
교구 상임위 회의를 준비하며, 내가 찾았던 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나는 다시 설 수 있습니다."
내게 그런 이가 누가 있던가 생각하며, 펼친 성서에서 나는 그 답을 찾았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요한 11,35)
그리고 나는 예수님처럼 그 단 한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 2006년 - '교사를 왜 하느냐'에 답하다.
(중고등부 교사를 시작하며, 선배 교사가 교사를 왜 하는지 써내라는 말에 적어낸 글)

왜 주일학교 교사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청소년 사목을 위해서 지금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이 자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청소년 사목에 매달리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그분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청소년 사목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제 삶 전부를 통해 '인간 구원에 봉사'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영성적으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갈망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때론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 그들을 동반할 또다른 동반자를 살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매순간 그분께서 제게 원하시는 자리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날개'와 같은 희망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을 위해 그 친구들을 그리스도께로 모아들이고,
교회 공동체의 신앙을, 그 신비를 함께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함께 알아가고자 하는 그 갈망이
저와 청소년들을 변화시켜줄 샘물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2007년 - 블로그에 올린 글 '나는 꿈을 꿉니다.'

전부터 나는 꿈을 찾아 왔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은 건가? 선생님이 되는 것일까? 난 꿈이 없는거 아닐까?
나는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목이 하고 싶은 것일까? 수녀원은 어떨까? ActionSong도 만들어보고 싶은데..
그리고 대학에 왔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있는데.. 되고 싶은 건 없는 걸까? 돈은 벌면서 살 수 있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꿈이 너무 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상황에 비해 너무나 커서 꿈이 아닌 공상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내 꿈은 결국 단순한 한 가지였다는 것.
의사도, 교사도, 청소년 사목자도, 수도자도, ActionSong 제작자도
그 한 가지 안에 포함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꿈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내게는 사람을 살아나게 할 힘이 없습니다.
그것은 라자로를 살리신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분께서 살리신 사람을 돌보고 격려할 마음과 힘이 남아있습니다.
그분께서 이미 살리신 이들이
내가 함께 머무는 것을 통해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게는 아픔을 들어줄 수 있는 귀가 주어졌습니다.
내게는 아픔 안의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이 주어졌습니다.
내게는 내가 발견한 희망을 나눌 수 있는 목소리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내게 주어졌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꿈을 위해 이것들을 다듬어가려고 합니다.

특별히 나는 청소년들을 살아가게 하는데 쓰여지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청소년들을 초대하는 일.
혹은 사랑 그 자체 앞으로 청소년들을 초대하는 일.
그 친구들이 그것을 보고, 느끼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일.
그래서 사랑을 살아가게 되는 일을 꿈꿉니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나의 꿈은 복잡하지도 한정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나도 단순하고 자유롭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 2008년 -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9,36)

왜 청소년 사목이 나에게 사명으로 주어졌는가?

하느님께 낚여 신앙을 갖게 되고, 그것을 살고자 하는 갈망이 생겼다.
지난 시간 단 한 순간도 하느님은 나를 떠나지 않고 이끌어주셨다.
그리고 내 안에 '연민'을 담아주셨다.

청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고독하고, 아파하며, 울고 있는 그 마음. 목자 잃은 양들의 마음이다.
그리스도라면 그 청소년들을 외면하실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생각했던 질문이었지만, 답은 단순한 것이었다.
왜 청소년 사목을 선택했는가?
나는 대답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 이는 이희연 로사의 작은 신앙고백입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8년 12월 17일 이희연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