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4 19:36
[사명/신앙고백] 김미소 마르가리타의 신앙고백입니다. (김미소/20090331)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5,456  
 
저는 모태신앙을 가졌습니다.
저의 집안은 모두 가톨릭 신자들이고 저는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음이 깊지 못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은 한여름날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처럼 지루하기만 하였고,
성당 교리보다는 학교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즐거웠습니다.
성가대,전례부,복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저는 학원에 가서 주말 보충수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단순한 삶에 높은 파도가 덮쳐왔습니다.
힘든 시기동안 마음을 터놓고 말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사소한 일로 걱정시켜드리고 싶지 않았고,
친구들은 과연 내 고민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들어줄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아무도 없는 성당을 찾아갔고
맨 뒤쪽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기도를 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흔히 기적이라고 말하는
"주님이 제 앞에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혹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흔들리고 있는 저를 강건한 팔로 꼬옥 안고 있는 것 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무도 없는 성당에 가서 기도드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성당에 갈 때 마다 절 인자하게 맞아주시는 마리아님 동상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저는 매주 미사에 나가기 시작했고 전례부에 가입하는 등
열심히 성당을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이사를 하게 되었고
활발한 성격과는 달리 첫 낯을 심하게 가리는 터라
새로운 성당에 가기가 두려웠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용기내서 성당을 다시 다녔지만
예전처럼 온 마음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주변사람들은 어느덧 고1이 되버린 저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이루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제게 너무나 벅차기만 하였고
제가 남들이 다하는 이 일을 왜 해야하는지 당위성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제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 직전,
그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저는 무기력증에 빠졌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초,중학교때 상위권을 달리던 제 성적은 바닥을 쳤고
가족들은 이러한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걱정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저에게 하늘마음을 보여주며
"청소년 큰잔치" 자원봉사자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좋다고 하였습니다.
모임 첫 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제가 지금까지 겪고, 속해있던 곳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친구였고, 형제였습니다.
언제나 경쟁하며 끼리끼리 어울려다니기만 했던 제게 그곳은 안식처였고
전 그곳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후 저는 교구,지구 CYA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은 언제나 제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CYA활동을 몹시도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저는 그곳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고 배웠습니다.
제 삶은 점점 의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제 학업계획을 세우고 공부하였습니다.
성적은 점점 올라갔습니다.
지구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작은잔치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며
노력만 한다면 안되는 것이 없다, 난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언제가 주님이 절 지켜보고 계셨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마리아님의 은총으로 해내었습니다.


그리고 고3이 되었고 저는 CYA임기를 끝마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전 주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대입 후 힘든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는 이들을 위하여 함께 하겠다고......
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고2때 열심히 공부도, CYA도 열심히 했던 것 만큼 고3도 잘 보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입에 실패했고 재수를 시작했습니다.


2005년은 제게 너무나 추운 한해였습니다.
저는 소속이 없었고 너무나 외로웠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지 원망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외로운 상황속에서 성당을 찾지 못했습니다.
주님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릴 때 그때 다시 성당에 가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고 핑계일 뿐이었습니다.
언제나 손이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음에도
저는 힘들게 빙빙 돌아갔습니다.
마치 주님을 믿지 못하여 수십년을 가나안땅을 찾아 헤맨 이들처럼......


겨우겨우 수능을 보고
저는 하루하루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성당을 찾았습니다.
기도하면서 말했습니다.
"주님......대학에만 붙게 해주세요.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지금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 문이 열리는 순간, 그때 주님과 한 약속처럼
저는 주님의 자녀로 살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교사회에 찾아가 입회신청을 하였습니다.


얼마 후, 저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성당교사를 시작했습니다.
성당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때로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 아픔마저도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사정상 교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대학생활에 치어 또 다시 성당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교사를 그만둔 후 2년은 제게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돈주고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배웠지만
저는 점점 지쳐갔고 메말라가는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멀어진 성당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학년의 끝자락에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제가 고3 때,
저와 같이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친구들을 위하여 함께하고 싶다고 한
주님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습니다.
다시한 번 사명을 가지고 그 친구들의 손을 잡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주님 곁으로 돌아가기 더 힘들기 전에,
부족한 저를 받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제가 요즘 수강하고 있는 "영미문학의이해"에서
영어로 된 성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성경을 가르치시며
"성경은 죄의 역사다. 인간이 어떻게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신이 어떻게 그 인간들을 용서하고 끌어안는지 보여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24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 동안
"돌아온 탕아"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주님의 곁을 떠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저를 내치지 않으시고
제가 힘들 때나 슬플 때 언제나 저를 힘차게 안아주십니다.
그런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저는 대단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이른 아침 일어나 집을 나설 때
상쾌한 공기, 길섶에 핀 조그만 꽃, 아스라이 피어나는 안개,
그리고 미약한 저의 영혼을 지켜주심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김미소 마르가리타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9년 3월 31일 김미소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