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4 19:37
[사명/신앙고백] 다시 처음처럼 (장윤옥/20090501)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6,033  
 
처음의 신앙생활

모태 신앙으로 하느님과 예수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몸이 불편하십니다. 다리 한 쪽이 짧아서 저시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걸음마를 배울때 항상 엄마와 함께 성당에 나가서 미사도 드리고
그곳 안에서 잠이 들기도 하였고 나만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치부에 들어가 활발한 성격의 저는 친구들과 함께
사제관 앞에 있는 난관에서 놀고 떠들고 계단 중간에 있던.. 작은 공간에서..
힘들면 숨어 울기도 했고 거기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해서..
주임신부님과 보좌신부님께서 매일 나와서 달래주시거나 혼내주셨습니다.

성당안에서는 저는 말썽꾸러기로 통했습니다.
아무도 신부님이 무서워 다가가지 못할 때.. 저는 신부님 뒤에서 장난도 치고
신부님이 장난삼하 놀리시면 때리고.. 그래도 신부님들은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서
제 마음에 편안함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집에선 맨날 치고 박고 부셔지는 소리만 들렸던 어린시절..
성당은 제게 또 다른 집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과 수녀님을 잘따르고 가족같이 느꼈고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성당에 나가기 싫어!!

하지만 초등부시절.. 초기때는 사람들과 잘 어울렸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갈 수록
성당에 나가기 싫어져 엄마께는 성당간다고 말하고 근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성가대였던 제가 친구들과 싸우고..
너무 힘들어 했는데.. 그 친구들은 날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녀님의 도움으로 다시 친구들과 친해졌지만..

학교생활이 힘들어졌습니다.
어떤계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같이 있던 성당친구들은 떠나가고.. 저는 학교선배들한테 맞고..
친구들한테는 욕도 먹고 미친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전 사람이 싫어고.. 성당에 나가도 성당친구들이 절 무시했기에..
성당 나가는걸 꺼려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때 다른초등학교였던 아이들도 저를 성당에서 따를 시키고
바보라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버티면서 성당에 나갔습니다... 그러다 성당과 멀어지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꽃동네 봉사캠프를 간 중2.. 그때 같은 조를 한 친구들과 연극을 했는데..
연극때.. 연기를 못한다고 키득키득거리는 친구들과 바보니까 라는 시선에..
견디지 못했습니다.

봉사캠프때 느낀것도 있지만.. 거기서 느낀 치욕감이란.. 말 할 수 없는 좌절감을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성당과 멀어지고.. 성당에 대한 인식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믿는사람이라고 입으로 말하는 자신들이 얼마나 나쁜 죄를 범했는지 모르는
사람들 처럼 보였습니다.

나의 위로 핸드로기아

그러다.. 혜화동에서 한 핸드로기아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는 나를 바보라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당을 멀리했으면서도 혜화동에 가는건 늘 항상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성당을 안나가도.. 거기서 액션송을 배웠고..
같이 미사도 드리고 놀고 그럴때 마다 행복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구로로 오면.. 눈물이 나고 힘들어지고..
내가 왜 살아야 하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제 위로가 된 핸드로기아 모임날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제4회 청소년큰잔치에 참가하다.

성당을 멀리했지만 나가고 싶을때 나가고.. 피하고 했던 저를 불러드린 청큰.
그리고 조재연 비오 신부님과의 첫만남..
핸드로기아 사람들과 자봉이 신청을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청큰 당일 제대에 올라 신부님들을 바라고보 액션송을 같이 했을때의
기쁨이란 너무나 컸습니다.
또 구로성당에 계셨던 서기원 비오신부님을 다시 만나 뵈서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신부님을 절 잊지 않으시고.. 기억해주셨다는 것에 놀라웠고 같이 할 수 있던것에
기뻤습니다.

떼제를 알게 되다..

많이 힘드시기 누구의 소개로 알게된 떼제에 처음 갔을때..
지루함을 끼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이 뭔데하는 마음이 잡혀 있을때 가서..
처음엔 핸드로기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하여 가게 되었지만..

두번이 세번되고 몇십번이 되면서..
저에게는 또 하나의 위로가 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뭔데 하던 마음이 사라질때즘.. 그곳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고..
공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고..
마음에 따뜻함이 다시 살아 나는것 같았습니다.

떼제 작은손발이로..
중3 어느 겨울 날이였을껍니다. 신부님께서 작손을 찾는다는 말을 하셨을때
저는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봉사하고 싶어 했고 마음의 따뜻함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작손이 되었고..
같이 할 친구들도 두명이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떠나.. 혼자가 되었을때..
세모라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들에게서 편안함을 느끼고 다시 활발해 진 제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즈음..
신부님께서 공부도 하고 성당활동도 하라는 말씀에 작손을 그만 두게 되었고..

구로성당으로.. 청년으로 돌아온..

구로성당의 청년으로 미사에 참여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적응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과 가까이 가려 하기보다..
난 혼자만 미사에 참여해야지 하다가..
초등부때 알던 언니를 만났습니다. 그 언니는 저를 잘 챙겨줬고.. 친했습니다.
연락이 안되다가.. 우연치 않게 봤는데.. 그 언니도 냉담을 하다가..
다시 나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언니를 본 기쁨도 있었지만.. 다시 냉담을
시작하게 되었고 대학교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또 떼제도 나가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고립되려 노력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9 제주의 칠성로 중앙성당으로 다시 마음을 붙잡고..

대학동기의 고향인 제주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2009년에는 성당에 나가야지!! 활동해야지!! 하고..
그 스타트를 끊게 된것이 제주 중앙성당이였습니다.
놀라웠던건 조신부님과 함께했던 미사랑 많이 닮은 미사로 제마음이 편했던것과
고해성사로 복잡했던게 사라지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2009 3월 평택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저는 지금 수원교구 평택대리구 성당에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혼자 성당에 나갔다가 기도드리고 미사드리고 2주를 그렇게 다녔는데..
대학동기가 그곳에서 중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었고 저를 보더니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청년회로 이끌어 저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모든사람들이 처음엔 낯설었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 둘씩 반갑다고 하고.. 같이 있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그들이 저를 챙겨주고..
같이 미사에서 성가도 부르고.. 함께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자신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편안한 모습의 제 모습이.. 보인다고 말한 같이 사는 친구의 말에..
놀랐습니다.


이제 서울대교구를 떠나 지금 수원교구로 이적하게 되면..
만나기 힘들겠지만..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같은 하늘 아래에 살수 있다는게
행복합니다..
또 옛날에 느꼈던 사람들 안에서의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서로 사랑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겨 행복합니다..
다시 처음처럼.. 당신모습 닮아 가기를 희망합니다..

2009년 맑은 하늘 아래 봄날.. 장윤옥 실바아의 신앙고백이였습니다.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9년 5월 1일 장윤옥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