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성에 포장된 10대의 性

[헤럴드경제 2005-02-21 15:17]

영화 `제니, 주노` `몽정기2` 들여다보니…

10대의 성(性)은 없다.

10대의 성을 다룬 영화ㆍ드라마가 늘고 있지만 이 속에서 정작 청소년의 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기껏해야 `10대의 성`이라는 허울 좋은 무늬가 수놓인 예쁜 팬시상품이거나 남성의 음험한 욕망을 여고생에게 투사한 `음담패설`일 뿐이다.

속내가 뻔한 `논란 마케팅`을 펼쳤던 `제니, 주노`는 `15세 소녀의 임신`이라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이용한 전형적인 소재주의, 상업주의적 술수로 점철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정작 청소년의 성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이나 물음, 갈등은 모두 괄호 안으로 묶어놓고, 그 여백을 사랑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팬터지로 채워버린다. 여중생의 자가 임신테스트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임신`을 영화 속 스토리 이전에 `이미 벌어진 일`로 스크린 바깥으로 쫓아버림으로써 부담을 덜어내고 두 어린 연인이 만들어내는 CF 같은 화면을 맘놓고 늘어놓는다. 임신에 대한 두 남녀 중학생의 고민은 소녀의 적극적인 다그침과 이로부터 도망치려는 소년의 모습으로 잠깐 그려지지만, 이 모습은 어딘가 많이 봐 왔던 장면이 아닌가. `아이를 배게 하고 도망치려는 남자와 그를 붙들려는 여자`라는 극히 70년대적인 상황이 21세기 버전으로 재현된 것이다.


잠깐의 고민이 끝나면 이들은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라는 교과서보다 더 비현실적인, 무익무해한 `결론`에 도달한다. `사랑`은 다시금 사회적 책임과 현실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하고 두 어린 연인은 오직 `연애`할 뿐, `욕망`하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는 욕망하는 주체의 다사다난한 갈등과 성취의 현실을 지워버리고, 그 빈 자리를 몇 장의 그림엽서로 대체한 팬시상품이다.

대중문화상품에서 청소년의 성에 대한 편견과 무지의 또 다른 반영 사례는 `몽정기2`다. 이 영화는 여고생을 `욕망의 주체`로 불러낸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달았지만, 정작 스크린에서 발견되는 것은 남성의 왜곡된 욕망이다. 한 남자 교생에게 몸이 달아 있는 여고생들이 앞다퉈 `육체적 대시`를 한다는 설정은 놀라우리 만큼 뻔뻔하고 무모한 `음담패설`이다. 이 설정은 `여자들도 원할 거야`라는 남성들의 강간 팬터지와 여성들의 `씨앗싸움`이라는 봉건적 상상력의 결합이 낳은 기괴한 결과물이다.

다만 긍정적인 것은 이들 영화가 그래도 10대가 욕망하는 주체임을 공공연히 말한다는 점일 텐데, 예술작품이라면 `춘향전`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미 끝난 이야기이고 현실에서라면 신문의 사회면보다 더 정확할 수는 없다. 청소년의 삶을 제대로 그려내고 그들이 `욕망하는 것`과 `욕망하는 방식` 그리고 그들의 욕망을 체계적으로 왜곡하는 사회와 기성 세대의 책임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면 10대의 성을 내세운 작품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어린 성을 팔아 여고생들의 호주머니나 털려는 수작일 수밖에 없다.

`임신하는 여중생` `자위하는 여고생`을 내세웠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뻐기는 영화에 묻고 싶다.

"너희가 중딩의 성을 아느냐?"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 게시글 이동 알림 : 2005년 2월 21일 이지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