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2 20:32
꿈의 씨앗 6 - 나의 서품 15주년을 기억하면서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3,456  
 
 
-----<< 나의 서품 15주년을 기억하면서 >>-----
 

2004년 12월 어느 날, 나는 마닐라의 아테네오 대학안의 EAPI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열병을 앓고 있었다. 39도가 넘는 고열로 잠을 잘 수 도 없었다. 며칠 째 누워서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와야 하는가? 왜 이 불원천지에서 고열에 혼자 누워있는가? 하는 고독감과 밀려오는 슬픔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헨리 나웬 신부님의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내가 있는 퀘존시티의 아테네오 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Cubao의 St.Paul Publication에 갔다가 발견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밤을 꼬박 새워 읽을 수 밖에 없었다.

“ Can you drink this cup?”

 
아마.. 한국제목은 '이 잔을 들겠느냐?' 일 것이다.
고열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에 담겨있는 내가 직면한 문제들 때문에 나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나는 고열이 가라앉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나의 열병은 단순한 열병이 아니라 마음의 열병이 포함되어있었던 것 같다. 그 책을 읽고 며칠이 지난 후, 나는 내 오랜 필리핀 친구인 구스만 신부님(Fr. De Gusmann Degz)의 초대로 파라냐케에 있는 살레시오 성당에서 하는 한 서품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서 티모르출신의 인도네시아 수사의 서품식이었다. 타갈로그로 부르는 황홀한 성가와 품위 있는 예절, 그리고 돈 보스꼬의 상징으로 장식된 성당... 모든 것이 참 아름다웠다.

그 서품 미사를 참여하면서 나의 마음은 기쁨 가운데 있었고, 동시에 그 서품식은 나의 서품 때를 떠오르게 했다. 1990년 2월 9일 50여명의 수품자들이 올림픽 체조경기장 한 가운데에서 수 많은 신자들 가운데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으로부터 사제로 서품되던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는 가운데 한 장면이 나의 모든 생각을 멈추고 얼어붙게 했다. 그것은 주교님이 새로 서품되는 수품자(부제)에게 성작을 주는 예식이었다.
 

 
 
 
그 예식은 내가 수 십 번도 더 보아 온 예식이었다. 그런데 왜 그 장면이 나의 주목을 끌었을까? 주교님이 새 사제의 성작을 축성해 주는 그 장면은 주님의 성찬례를 거룩하게 지내라는 것으로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한 서품식에서 그 예식의 의미가 다시금 새롭게 나를 초대하고 있었다. 그 한 순간 며칠 전 읽은 Can you drink this cup?의 내용이 겹쳐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 선생님 소원이 있습니다. 꼭 들어주십시오. ” 하고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 예,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마르꼬 10장 35절- 39절)

예수께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에게 “ 너희도 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신다.

바로 새 사제에게 성작을 주는 주교님의 상징적인 의미가 바로 “ 당신의 잔, 주님의 잔”에 대한 초대라는 것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15년 전 나의 사제 서품 때 내가 받은 그 잔이 “ 너희도 내 잔을 마실 수 있겠는가 ?”한 바로 그 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잔은 내가 사목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잔이며 , 백성들 때문에 또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겪어야 하는 쓰라림의 잔이며,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고독의 잔이며, 그리고 내 백성인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인 많은 이들의 울부짖음의 잔인 것이다. 또한 특별히 나의 성소의 영역에서는, 하느님과 교회를 향한 청소년의 갈망이 담긴 잔인 것이다.

바로 내가 15년 전 받아들인 그 성작이 이러한 의미가 담긴 잔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통찰하게 되었다.

헨리 나웬 신부님은 그래서 그 많은 의미가 담긴 잔을 먼저 잡으라고, 그런 다음 잔을 들어서 경축하라고, 그리고 기꺼이 마시라고, 그러면 그 아픔과 고통의 잔은 부활의 잔, 기쁨과 축제의 잔, 그리고 우정의 잔으로 바뀌고 변화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그 잔의 의미를 깨닫는 은총의 순간에 와 있다.
헨리 나웬 신부님의 글처럼, 내가 지금 마셔야 만 할 잔이 아픔과 고통의 잔인 것을.. 나는 그 고독과 내침을 당한 아픔, 그리고 상처 입은 마음의 잔을 용감하게 움켜잡고 있다. 그리고 누구에 대한 원망이나 비난이 섞인 독설이 아닌 “ 청소년의 기쁨과 희망, 아픔과 울부짖음 ”을 위해 나의 이 잔을 경축할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성찬례 때 “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신 것 ”처럼 나의 보잘 것 없는 잔을 부활의 잔으로, 기쁨과 친교의 잔으로, 새로운 우정의 잔으로 변모시켜 주시리라 믿는다.

매일의 미사 가운데 나는 나의 고통, 나의 고독의 잔을 든다. 그리고 경축한다.

청소년이 일상으로 겪는 아픔과 기쁨, 희망과 슬픔을 위하여 건배.
청소년의 젊음을 담을 수 있는 교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건배.

그리고 청소년들 거룩함에로 초대하기 위한 갈망이 담긴 잔을 매일의 음료로 받아 마신다.


+ 주님,

청소년들에게 유혹을 극복할 의지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시고,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저희의 젊음(열정)을 바치게 하소서.

+ 도움이신 마리아,
◎ 저희와 청소년 사목을 위하여 빌으소서.
+ 성 요한 보스꼬,
◎ 저희와 청소년 사목을 위하여 빌으소서..
+ 복자 안토니오 슈브리에,
◎ 저희와 청소년 사목을 위하여 빌으소서.
+ 복자 요한 23세,
◎ 저희와 청소년 사목을 위하여 빌으소서.
+ 조셉 까르딘,
◎ 저희와 청소년 사목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 2005년 2월 9일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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