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2 22:55
꿈의씨앗 31 - 내가 청소년 사목을 택한 이유(상) [평화신문 2006.5.21]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4,709  
 
 
2004년 11월 27일. 모두가 잠든 마닐라의 새벽에 잠을 청하다, 청하다 책상에 앉았다.
‘내가 왜 여기에 와서,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본질적인 질문이 내 가슴을 꽂았다.

나는 왜 청소년 사목에로 불리웠는가?

이것은 오랫동안 내게 끊임없이 계속 되는 질문이었다. 왜 하필이면 청소년인가?
노동자, 어린이, 노인, 장애자, 거리의 사람들, 고통 받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
그 가운데 왜 하필 청소년 사목에로 불리웠는가? 대체로 어떤 하나의 성소, 부르심에는 다 자신의
이력을 토대로 불리우는 것 같다. 고기잡던 어부들이 사람 낚는 어부로, 유대교의 신봉자였던
사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불리워졌듯이 말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여겨진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참 사랑을 많이 받았다.
누나들과 형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고, 모든 형제들에게 엄하시던 아버지는 내게는 예외이셨다.
할머니의 쌈지돈은 내 용돈 창고였고, 어머니의 사랑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사랑을 주신 분은 역시 어머니였다.
 

 
내가 6살쯤이 되었을때, 나는 신장염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다.
1년을 매일 흰죽과 병원 간장만을 먹곤 했다. 조금만 다른 음식을 먹으면 체하고, 바짝 바짝
말라갔다 (그때의 영향으로 지금도 남들에 비해 훌쩍한 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이 먹고 싶어서 밥을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렸고,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 그리고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잘못 하면 내가 죽을 거라는 말이
었다. 어린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엄마와 떨어져야 한다는 두려움에무서웠다. 그래서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거야?"
어머니는 "응, 네가 죽으면, 부엌 찬장 옆에 유리 상자를 만들어서 밥할 때 보고,
설거지 할 때 보고 엄마 곁에 둘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나는 엄마의 그 말씀을 들은 후, 내가 죽어도 엄마가 나와 함께 있을 거라는 깊은 신뢰감을 얻었고,
그 신뢰로 인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사제가 되어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 아들을 둔 어머니를 병원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어머니는 아들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때 나는 내 어린시절 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러나 병든 아들의 그 아픈 질문에도 어린 아들을 안심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런 사랑을 먹고 자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후 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형제들이 있어도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
해 줄 수는 없었다. 2년 반 후 아버지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이 시간을
돌이켜보면 난 시커먼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색깔로 치면 뿌연 회색빛이다. 삶에 자신이 없었다.
사춘기와 겹쳐서 마음 안에 알지 못할 공허감과 분노, 그리고 부모가 없다는 박탈감, 지하 전세방
에서 그 침침함의 시간들, 친구들과의 관계도 힘이 없었다. 늘 우울함과 열등감에 시달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보냈는지….

나의 유일한 해방구는 성당이었다.
난 학교에서는 힘없고, 자신감 없는 아이였지만, 성당은 내게 힘을 주었다. 내 가정의 상황을
묻지 않았고, 우리의 경제적 능력을 문제 삼지 않았다. 성당 친구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줬다. 나는 감사하게도 수용적이고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은 신부님, 수녀님을 만났다.
나는 많은 시간을 성당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친구가 나를 평일미사에로 초대했다.

눈 쌓인 새벽길을 하얀 입김을 뿜으며 가던 성당 가는 길, 여름날 신선한 새벽공기를 맡으며
뛰어가던 그 길… 그 시간들은 내게 한없는 쉼과 충전의 시간이었다. <계속>
 
[평화신문 2006.5.21일자 '조재연신부의 청소년사목이야기'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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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15-11-17 23:35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서 읽어보니 더욱더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인것 같아요.
저도 아이에게 따뜻한 엄마가 되어주고싶은 마음과 함께 반성하게을 됩니다.
최종현 15-12-13 12:58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깊고 큰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 그 이상으로 전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 과연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됩니다..
마음 속 깊은 생각의 흐름을 정리해볼 수 있게 해주시는 짧고도 긴 글..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박준규 15-12-17 17:54
 
많은 친구들의 해방구가 성당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아무리 노는 곳이 좋고, 친구들이 좋고, 기도하기 귀찮아도,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지낸다면 나이가 들었을 때 성당을 그리워 하고, 하느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항상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안에서 자라나게 해야겠습니다.
윤수연 16-01-01 08:55
 
역시 신부님께도 청소년에게 관심이 많은 신부님과 수녀님이 계셨군요.
역시 모든건 관심으로 부터 생기는것 같아요. 성공한 여러학자나 많은
사람들도 관심으로 시작 되었다고 하던데...
아이들의 관심을 알아주고 함께 호응해주는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