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2 22:58
꿈의씨앗 34 - 신앙은 은총이다 [평화신문 2006.6.11]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4,687  
 
 
부모님 기일이 되면 형제들이 모여서 함께 미사를 드린다.
어느날, 나와 6살 차이가 나는 큰 조카가 아이와 함께 참여했다.

조카 손주는 5살된 에스텔이다.
에스텔은 미사를 드리는 중간 중간 '예쁜 손-기도 손'을 하고 있었고,
또 주님의 기도를 노래하는데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부모님 기일이라 약간은 숙연한 분위기였는데, 에스텔이 갑자기
성가 중에 모두 손을 잡으라고 하고,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손을 흔들면서 기쁘게(?) 주님의 기도를 노래했다.

미사 후에도 촛불을 끄는 것은 자기가 하겠다고 떼를 썼다.
에스텔은 늘 엄마가 매일 묵주기도할 때 옆에 있다가 촛불을 끄곤 했고,
어린이 미사에서 기도 손을 배웠고, 주님의 기도를 할 때 손을 잡고
흔들면서 예의 그 "하늘에 계신…"으로 시작하는 어린이 미사 성가를
신나게 바쳤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 학자가 이야기하는 어릴 때 어머니 무릎과
교회 체험으로부터 얻게 되는 '체험된 신앙(Experienced Faith)'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여년 전으로 거슬러가서 그때의 나를 본다. 놀기 좋아하는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첫영성체 교육이 있었다. 돈(헌금) 내고 빵(?)을 받아먹지
못하는 박탈감은 첫영성체 전 모든 어린이가 갖는 심정이다. 나도 열심히
주일학교를 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드디어 첫영성체를 받으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때는 그것이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닌 몇 어린이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착각했다.
며칠은 나갔지만, 동네 친구들의 놀러가자는 유혹에 그만 넘어가서 하루 이틀
첫영성체 교리를 빼먹고 결국은 식구들도 모르게 그 시간을 뒷산에서 친구들과
병정놀이를 하면서 놀게 됐다. 일명 땡땡이를 친 것이었다.

그때의 첫영성체 교리 선생님은 결혼하신 어머니 교사인 체칠리아 선생님이었다.
아마도 주일학교 생활을 하면서 나를 예뻐하셨는지 아니면 부끄럼 많고, 주위가
산만한 나를 특별히 보살펴주실 마음이 있으셨는지 지금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선생님께서는 형을 통해서 첫영성체 이틀 전에 나를 찾으셨다. 할 수 없이
형 손에 끌려가서 만난 체칠리아 선생님은 수녀님께 허락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기본 기도문만 외우면 첫영성체를 주겠다고 이틀 동안 기도문을 열심히 외우라고
하셨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뜻밖의 제안에 놀랐지만,
첫영성체를 받고 싶은 욕심에 체면 불구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불과 3일간 교리를 하고 시체말로 엉터리로 첫영성체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가족들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고, 떠들썩하게 그리고 우쭐거리면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 가운데 성당에서 한번 체칠리아 선생님을
만났지만 나는 내 특유의 내향성과 부끄러움으로 그때 그 아이가 바로 나라는 것을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을 지금까지 갖고 있다. 그 분은 알고 있을까?
그 엉터리로 첫영성체를 준비한 아이가 사제가 되었다는 것을.

그 이후 나는 본당에서 많은 첫영성체 교리반을 가졌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때로 나는 부족한 교리공부를 하고 기도문도
잘 못 외우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어떤 동기이든 받기를 바라면 모두에게 첫영성체와
세례를 주고는 했다.

이것이 바로 존 워스트홉(John Westrhoff) 이라는 종교학자가 이야기하는 체험된 신앙의
한 토막이다. 그리고 이 신앙의 단계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소속되는 신앙 혹은 영향을
받는 신앙의 단계(Affiliative Faith)
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신앙의 도전을 받아 추구하는
신앙(Searching Faith)
으로 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체적 신앙(Owned Faith) 로 나아간다.

유년기의 체험된 신앙은 바로 그 이후에 있을 주체적 신앙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이것이 바로 청소년 사목이다.

그 열매인 주체적 신앙은 10년 혹은 20년 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교회 청소년 사목의 장에서, 씨를 뿌리면 곧바로 어떤 결과를 얻기 바라는
오늘날의 물량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평화신문 2006.6.11일자 '조재연신부의 청소년사목이야기'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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