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2 23:01
꿈의씨앗 36 - 사춘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유혹의 시간 [평화신문 2006.6.25]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4,272  
 
 
공관복음은 복음서 초기에 예수님의 40일 광야 체험을 들려준다
(마태, 4,1-11; 마르1,12-13; 루카 4,1-13 참조).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광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신 것이다.
왜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는가? 보내셨는가? 그곳은 사탄이 있고,
야수의 본능에 따라 사는 들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왜 하느님은 사랑하는
당신 외아들인 예수님을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 아닌 험난하고 위험한 곳으로
몰아내셨는가? 그것은 곧 사랑하는 자식은 내둘러서 키워야 한다는,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아버지의 양육 방식인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더 준비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삶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그 유혹거리와 본능이 들끓는 광야로 몰아내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그 일생을 통해서 성장시키려는 안배하심에서 많은 은총의
시기를 마련하신다. 사춘기의 방황, 중년의 갈등, 갱년기의 황폐한 마음 등이 바로
그런 은총의 시기를 걷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모셨듯이, 하느님께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부여한 첫 은총의 시기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악마의 유혹거리를, 사탄의 유혹거리를 보여주신다.

의미있는 것과 의미없는 것, 가치있는 것과 가치없는 것. 죄와 하느님의 것에 대해서
갈등하게 하고 유혹에 빠지게 하고, 마침내 스스로 설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을 때
하느님 아버지를 진정 알게 되고 당신 파트너가 되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은총의 시기인 것이다.

청소년기에 아이들은 얼마나 내적 방황, 외적 갈등을 겪는가? 하루에도 마음의 산을
수백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이들의 내면이다.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청소년에게 갈등의 시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어른들이 원하는 것, 하나만을 원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하라고, 그리고 지금은 공부만 하라고.
하지만 그 때가 되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한 시기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인간은 그 시기에 겪어야 할 것을 겪게끔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하느님은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모든 것에서 갈등하고 방황하게 하고,
집을 뛰쳐나가게 하신다. 짓궂으신 하느님….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넓은 마음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분 마음으로 청소년을 바라봐야 한다. 윤리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자비로우신 눈으로 바라보시는 하느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루카복음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 이야기처럼 집 나가는 아들을 막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넓은 시선,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 왔을 때 "내가 오랫동안 너를 기다려왔다"며 기꺼이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그의 고생과 아픔들을 보듬어 줄 있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시선.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떼제공동체의 로제 수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 청소년이 왔을 때, 하느님께서 오랫동안 그대를 기다려왔다는 그 느낌을,
메시지를 주어야 합니다."


젊은 교회를 원하는 우리 모두는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희로 하여금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시선을 갖게 해주십시오.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눈으로 청소년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느님의 넓은 시선을 가진 교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지난 6개월간 연재해 온 '청소년사목 이야기'를 마치며,
감사한 마음을 성 요한 보스코의 말씀으로 대신한다.

 "청소년의 웃음소리는 하느님의 음악입니다."
 
 
[평화신문 2006.6.25일자 '조재연신부의 청소년사목이야기'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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