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2 23:03
꿈의씨앗 37 - 3부류의 청소년사목자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4,451  
 
 
워싱톤 D.C.에서 청소년 사목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있던 2006년 10월, 단풍이 곱게 물든 볼티모어 Road를 혼자서 운전하며 문득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청소년 사목자일까?'라는 성찰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기거하고 있던 Holy Name College의 작은 방에서 이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이 글은 저로 하여금, 다시 회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추듯이 저를 비추며 제 얼굴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청소년 사목자를 세 부류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째는 나쁜 청소년 사목자,
둘째는 좋은 청소년 사목자,
셋째는 복음적인 청소년 사목자.


세상에는 드물게,첫째 부류의 나쁜 청소년 사목자도 있습니다. 청소년을 이용하는 사람이지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청소년을 동원하고, 자신의 승진을 위해, 자신의 세속적인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청소년을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우 인기에 민감하며, 흔히 말하는 포퓰리즘(populism, 대중주의/인기영합주의)의 성향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 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주로 행사를 치릅니다. 수(數)가 그의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얼마나 많이 청소년이 참여했는지, 얼마나 큰 규모의 조직을 만드는 지, 얼마나 외부적인 홍보가 잘 되었는지가 그의 척도입니다. 그리고 윗사람 혹은 외부 사람에게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말로는 청소년을 위한 그럴듯한 이유를 댑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외적인 행사, 이벤트에 머뭅니다.

그들 안에는 자기 열등감과 자신에 대한 집중이 도사리고 있어서,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드러납니다. 그것이 작용할 때 혼자서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헌신적인 사람,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그들을 그 장에서 몰아냅니다. 이들을 통해 청소년 사목 안에서 악령의 열매인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등이 드러나게 됩니다(갈라티아 5장).

나쁜 청소년 사목자는 두 가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좋은 사람’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는 매우 온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 아래에서 벗어나거나 자신의 우리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그의 관심외의 존재이며, 때로 그들을 핍박합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 독설적인 사람의 모습이 됩니다. 나쁜 사목자가 높은 직책을 갖게 되면, 그 집단의 청소년 사목은 매우 위험해 집니다. 힘을 갖게 되면 그는 "보스(Boss)" 가 됩니다. 따라서 주변에 있는 동료들과 청소년들을 자신에게 줄을 서기를 암묵적으로 요구합니다. 사실 그의 개인적인 모습은 ‘청소년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입니다. 상처 주는 말을 쉽게 하고, 자신의 요구대로 따라주기를 강요하고, 물질이나 지위를 이용해서 그들을 억누르는 청소년 사목자이지요. 사실 그는 청소년의 내면에 - 그들이 어떤 아픔을 갖고 있고, 어떤 갈망이 있는지 -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주어졌으니까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이 채워졌으면 다른 높은 자리로 옮겨갑니다.

두번째 부류의 좋은 청소년 사목자도 있습니다.
먼저, 이들은 헌신적인 사람들입니다. 사람 혹은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영향도 줍니다. 좋은 사람이고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주로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도 많습니다. 청소년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이 자신의 공동체에 모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관심도 갖습니다. 이들은 주변에 청소년이 없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청소년과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함께 느끼고 호흡하고, 흥분하고 감동하고… 여기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것에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들의 한계는 청소년밖에 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청소년을 소유하기도 합니다. 그들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합니다. 다른 사목자가 자신의 청소년과 관계를 맺으면 매우 질투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아기와 같은 청소년을 빼앗겼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청소년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그 애정은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주로 직책으로 일을 합니다. 직책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 직책을 떠나면 많은 경우 청소년에 대한 피상적인 관심에 머물고 맙니다. 이들은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세번째 부류인 복음적인 청소년 사목자는 먼저, 하느님께 깊은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믿어줄 줄 알고, 자신과 맺은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신뢰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지키고 저버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청소년을 어떻게 대하시는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판단 기준은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혹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입니다. 늘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사람과 사건과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교회의 비전을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청소년이 예수의 가난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을 선택합니다.

또한 오늘날의 현실 안에서 어떻게 청소년 세대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에, 이들은 세상의 변화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러한 시선 안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신의 삶과 사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청소년을 구원하는 도구를 갖추려고 애씁니다. 이러한 시선은 그를 항상 재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고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성장시키려고 합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며, 그 공부의 의미를 압니다. 그것은 자신의 명예나 지적인 욕구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그의 공부도 기도도 삶도 모두, 청소년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음적인 청소년 사목자도 인간적인 한계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자신을 맡길 줄 압니다. 갈등과 고통을 겪어도 청소년을 구원하고자 하는 뜻을 꺾지 않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어떤 지위나 환경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자리도 청소년을 구원하고자 하는 장으로 주어졌다고 보는 하느님의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디에 있어도 청소년의 구원을 위해서 있습니다. 설사 그가 양로원에 머물러도 말입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생명을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그는 비전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청소년에 대한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매우 성숙한 사람입니다. 늘 꿈을 꾸고 있으며, 희망을 가슴에 품습니다.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그가 있으면 사람들은 힘을 얻습니다. 그는 열정이 있지만, 온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매우 유약한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도 거짓을 폭로할 줄 아는 용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약하지만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도전할 줄 아는 언제나 자신의 청소년을 떠나 더 가난한 청소년, 자신을 더 필요로 하는 청소년을 향해 떠날 줄 압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동반한 청소년을 더 큰 세상으로 내보냅니다. 그들을 파견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친구들이여, 리플로 저의 미완의 3부류의 청소년 사목자를 보완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생각하는, 체험한 청소년 사목자들의 모습을 제안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 글을 채워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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