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2 20:21
꿈의 씨앗 3 - 떠나라 !!
 글쓴이 : 조재연
조회 : 3,377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아브람은 야훼께서 분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창세기 12장 1절.4절)

2004년 7월 19일. 난 마음 안에 나만의 화두를 안고 길을 떠났다. 그리고 리투아니아로 향했다. 내가 왜 리투아니아로 떠났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언젠가 들은 리투아니아에 대한 막연한 동경때문이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더불어 발틱 3국중의 하나로 가톨릭 국가이다. 러시아 옆에 붙어있는 작은 나라로 러시아로부터 종속과 독립을 반복했던 나라였다. 리투아니아는 발틱 해로 진출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야욕에 저항하며 박해받고 산 민족이다. 강대국 옆에 끼여서 늘 마음 졸이며 사는 우리에게 동병상련의 연민을 느끼게 하는 나라인 것이다. 13세기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이래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면서 소련은 공산주의에 저항했던 가톨릭을 말살시키려는 정책을 썼다. 그래서 수도원을 해체시키고, 성당을 몰수하고 많은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를 투옥하고 박해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리투아니아에 심었다.
 

 
 
리투아니아에는 ‘시아울리아이에‘라는 십자가 언덕이 있다. 낙타처럼 두개의 혹이 있는 작은 언덕은 큰 것 작은 것, 비싼 것과 싼 것, 나무로 된 것과 쇠로 된 것 등 다양한 종류를 가진 수 천 개의 십자가가 숲을 덮고 있다. 이곳에 십자가를 세우는 전통은 14세기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억하면서 기도하는 의미에서 십자가를 세웠다고한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심에 의한 것이었다. 소비에트시절에 공산주의자들은 이 가톨릭 신앙의 상징이고 저항의 상징인 이 언덕의 십자가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십자가를 밀어버리면 사람들은 다시 밤에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십자가를 세우는 치열한 일들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 십자가 언덕은 세 번이나 불도저로 밀렸지만 다시 세워졌다.

난 이런 저런 역사적인 의미와 또 아름다운 성당들이 가득한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를 방문했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해서 사회주의에서 서구 자본주의로 완전히 편입되기 전의 친절하고 외지 사람을 환대하는 순수한 모습을 아직 가지고 있었다.

빌뉴스의 Old Town은 정말 작지만 중세의 고도답게 아름다운 성당들로 가득차 있었다. 난 정말 관광객답게, 또 순례자답게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었다. 동방 교회의 건축양식인 돔처럼 생긴 성당, 많은 이콘으로 장식된 가톨릭 정교회 성당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 등 리투아니아인들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심은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가 난 ‘성 안나 성당’을 방문했다. 그 성당은 여행책에 추천 성당으로 나올 만큼 작고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할 때 리투아니아의 성 안나 성당을 보고 “ 손바닥에 넣고 가고 싶다” 감탄할 만큼 작지만 아담한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성당이었다. 안나 성당 내부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스테인 글라스... 그리고 성당의 천장...
 
 
 
성 안나 성당을 방문한 후 나오다가 그 옆에 대단히 큰 성당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성당은 겉 모양이 매우 웅장하고 아주 멋이 있었다. 그래서 그 성당에 들어갔다. 거기서 난 기대와 달리 아주 파괴된 성당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파괴된 성당이 나를 거기에 머물게 했다.
 
 
 
 
화려한 성 안나 성당보다 더 내 마음을 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성당의 이름은 ‘성 프란치스꼬와 성 베르나르 성당’이었다. 아마도 러시아가 소련 연방으로 리투아니아를 흡수하면서 성당을 징발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했던 것 같다. 성당의 제대위에는 벽화의 흔적만이 겨우 남아 있었고, 성당을 재건하기 위한 성당의 자재들이 옆과 제대 뒤에 쌓여있었다.
 
 
 
 
성당의 기둥의 벽화는 다 긁혀있어서 흔적만이 남아 있었고, 과거의 신앙 유산들은 거의 파괴되어 있었다.
 
 
 
 
성당 기둥에는 아이들이 그렸으리라 짐작하는 성인들의 성화가 크레파스로 크게 그려져 병풍처럼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단순한 의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난 이 성당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가슴이 아팠다. 리투아니아를 다니면서 많은 파괴된 성당을 보았지만,
왜 이 성당이 내 마음을 이리 끌었는지...
난 그 성당 안에서 1시간 가량 머물게 되었다. 난 그 성당에 안아 많은 묵상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겉은 멀쩡하지만 내부가 파괴된 성 프란치스꼬와 성 베르나르 성당에서 우리 교회 청소년 사목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겉은 아직 멀쩡하지만 내부는 파괴된 성당처럼 많이 고치고 변화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 사목... 이 파괴된 성당의 모습과 우리의 상황이 겹쳐서 찹찹한 마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때 엄마와 함게 온 한 꼬마가 제대 앞에 다가오더니 무릎을 끓고 성호를 긋고 있었다.
 
 
 
 
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모습 안에서 새로운 바람,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파괴된 성당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그 성당을 다시 재건하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사로 잡았다. 기둥을 세우고, 스테인글라스를 만들고, 벽화를 복원하고 싶다는 열망....
파괴된 성당은 우리의 청소년 사목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파괴된 성당(청소년 사목)이지만 우리 자신의 기도로 청소년 사목의 기둥을 다시 세우고, 젊은 우리의 헌신으로 청소년 사목의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를 만들고, 자신을 내어놓음으로 청소년 사목의 제단을 만들고, 너와 나의 삶을 나누는 깊은 공동체 정신으로 청소년 사목의 제대를 만들고, 우리의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청소년 사목의 살아있는 성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느님만이 생기를 주시고, 하느님만이 홀로 황폐해진 우리와 우리 교회의 청소년 사목에 다시 활기를 일으켜주신다. 나는 이 묵상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의 생명 우리의 희망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고 또 믿어서 그 분을 향한 길로 걸어가고 싶었다.
 
 

 
나는 그 성당을 나오면서 나에게 생기를 주실 하느님께 청소년 사목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 주님, 청소년들에게 유혹을 극복할 의지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시고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데 저희의 젊음을 바치게 하소서.
  (성모송)
  도움이신 마리아, 저희와 청소년을 위하여 빌으소서.
  성 요한 보스꼬, 저희와 청소년을 위하여 빌으소서.
  복자 안토니오 슈브리에, 저희와 청소년을 위하여 빌으소서.
  복자 요한 23세, 저희와 청소년을 위하여 빌으소서.
  죠셉 까르딘, 저희와 청소년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 2004년 10월 14일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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